정연중칼럼148 고령화사회
잠깐 시간을 내어 서울에 다녀왔다. 장맛비와 찜통무더위가 오락가락하는 아주 그럴듯한 타이밍에 방문했었지만 아주 소중한 시간을 갖었다. 최근에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가 분양을 대행하고 있는, 인천 송도에 새로 짓는 재미동포타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것과 연로하시고 병들어 이제 양로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장인 장모님을 뵙고 오는것이 주된 방문 이유였다. 필자는 7남매중의 막내이다. 위로는 형님이 셋, 누님이 세분 계신다. 큰 누님이나 큰 형님하고는 나이차가 스무살도 더 되다보니 큰 조카가 2살이나 나이가 많고,이 조카가 손자를 보았으니 필자는 오십대 후반에 벌써 증조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증조 할아버지를 영어로는 그레이트 그랜파더(Great Grandfather)라고 부른다는것을 이번에 알았다. 이십년쯤후에 이 증손자가 아이를 낳으면 고조 할아버지가 될터이다. 그러면 그레이트 그레이트그랜파더가 된다고 딸아이가 알려준다. 필자는 아버님이 형제분들중 막내이셨던 탓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대면도 못했다. 어릴적 친구들의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손에 쥐어주시는 큰 알사탕에 신이 나기도 했었을 것이고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기억도 있었을것이다. 얼마전까지는 조부모는 물론이고, 삼촌들의 가족들까지도 함께 모여 사는 가정도 많아 친형제처럼 여러 사촌들과도 아주 가까운 피붙이로 정을 나누며 자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핵가족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더니 이제는 새삼스레 핵가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도 없이 그저 가족이란것의 의미는 부모와 한, 두아이로 이루어진 단촐한 식구가 전부인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핵가족화 되면서 가치기준도 달라져서 모든것이 서양식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심해진 사회에 살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서양인 이곳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제 별 다른 차이가 없고, 오히려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기위해 애쓰고 있는 은퇴후의 노년층들이 안쓰럽기만 했다. 이번 방문에서는 역동적으로, 무언가 이루기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무언가를 잃어버린듯한 늙은이들만 살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을 지금만큼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데 디딤돌이 되었던 세대들이 이제 늙고 병들어 힘없이 서있었고, 거기다가 평균 수명은 길어져서 힘빠진채로 십년 이십년을 더 버텨야 하는 초라한 모습들이 너무 많아 안타까웠다는 얘기다. 젊고 힘있을때 은퇴후의 삶을위해 잘 준비해둔 사람들은 몇 안되는것 같았고, 노인 아닌 노인 즉 초보노인들이 아주 많은 고령화 사회(Ageing Society)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튼, 아렇게 핵가족화 되어가는 사회는 출산율이 감소하고 의료기술이 발달하니 인구의 고령화를 촉진시키는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실제로 인구의 고령화는 어느나라나 경제적 활동성을 떨어뜨리고 건강보험이나 사회보장연금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한다. 대체로, 지금은 1명의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 5명의 노동인구가 필요하지만 얼마후에는 노동인구 1명이 1명의 노인을 책임져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하니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사회란 전체인구 중 65세이상 인구비율이 7% 이상~14% 미만인 사회를 말한다. 그리고 전체인구 중 65세이상 인구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는 “초고령사회(Super aged society)”라고 부른다. 65세를 기준으로 노인으로 분류하는데, 어떤이는 이 65세가 되어 노인으로 호칭되는것이 무엇보다도 싫다고 말하지만 어쩔수 없는일이다. 많은 나라들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들어서고있다. 물론 의학의 발달, 생활수준과 환경의 개선으로 평균수명이 높아지는 것이 고령화사회로 진행되는 가장 큰 이유이고,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은 노동력의 부족과 부양해야 할 노인의 증가 등, 그 심각성을 생각하면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고령화 사회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어떻게 하면 개인 개인이 생존을 위한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 협조하고 위하는 사랑의 대상임을 깨닫게 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생길것 같다. 요즈음은 핵가족의 시대를 넘어 일인가족의 숫자가 무시못할 수준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제까지와는 달리 자기주변의 친지들과의 원만한 인간 관계가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글을 가끔본다. 아마도 앞으로 새로운 구성의 공동체가 더욱 많아질테고,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사랑이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본다. 얼마전에 남태평양의 어느 부족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정말로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모습이 우리보다 훨씬 더 행복한듯이 보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거센 바람과 파도에 맞서 싸운 어부가 그날 잡은 고기들을 가지고 해변으로 돌아온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머지 부족 사람들은 그에게 달려온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물고기를 잡을 수 없는 노인도 있고, 바다에 나가기에 너무나 어린 아이들도 그 속에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무런 미안한 마음도 없이 어부에게서 물고기를 받아간다. 놀라운 것은 어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고기를 웃으면서 나누어준다는 점이다. 지금은 늙어 힘이 없는 노인이 되었지만, 그 노인들이 젊었을때 가진것을 나누어야 한다는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원리가 노인과 어린 소년의 삶을 궁핍하지 않도록 했으며, 그들의 얼굴에 신뢰와 애정의 미소를 깃들게 만들고 있었다.